그 날 이후 by saltyJiN

찾고 싶었다. 찾아야 했다. 


카카오톡은 커녕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전화번호는 최면을 걸면 기억 해 낼 수 있을까. 

당시 그 아이가 살던 아파트까지도 전철타고 자연스럽게 찾아갈 수 있는데,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났다. 한국을 떠난지 16년. 처음부터 연결고리는 많지 않았지만 지금와서 찾으려 하니 더더욱 남아있지 않았다. 아니, 남길 수 있었으나 그 아이의 성의를 눈치채기에 당시의 난 너무 둔했다.  


그 흔한 SNS를 할 성격도 아니고 동명이인도 많은 이름이라 모두 허탕이었다. 2년간 아무런 관련없는 전국의 동명이인을 염탐했다. 만약 얼굴에 손을 댔다면 지금 이런 모습일까,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허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면 이내 답이 나왔다. 모두 꽝. 그 아이의 눈은 특별했기에.  


그렇게 한달에 한두번쯤은 잠못드는 저녁 습관처럼 이런저런 기억의 실마리를 부여잡고 찾았 헤매었다. 토이의 ‘인사’를 홀로 운전하는 차에서, 잠들기 전, 수없이 들으며 이런 저런 재회의 모습을 그려 보았다. 아직 살아온 날 보다 살아야 할 날이 더 많다만 들은 횟수를 시간으로 나누면 다른 어떤 인생곡보다 알차게 듣지 않았을까. 그때마다 몰려오는 불안, 공허, 아련함. 그래도, 언젠가는 만나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었다. 그러기에 설마와 역시나를 반복하는 수 밖에 없었다. 


설마로 시작한 또다른 어느 날, 그런데 끝은 역시나가 아니었다.

미화라면 미화이지만 이건 기적, 혹은 틀림없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동안 담아둔, 어쩌면 간직한 채 평생 전할 수 없었을지도 모를 말을 전했다. 

그리고 서로의 공백을 채워나갔다. 그러다 알게 된 몇번이고 엇갈린 서로의 길. 그 아이의 마지막 용기를 담았던 표현은 당시 내겐 너무 담담했고, 나는 매번 내민 손을 저버렸다. 그게 마지막 손길이 될 줄도 모른채. 


서로의 길이 엇갈렸기에 안타깝고, 이젠 함께 걸을 수도 없기에 더욱 안타깝지만, 

내가 그 아이를 찾던 시기에 그 아이도 추억을 되짚고 순수한 감사의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는 이야기는 내게 큰 안도와 위안이 되었다. 


그렇게 대화는 이어졌고 서로가 시간의 태엽을 되감는 데에는 별다른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우리에겐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 많은 일을 알 시간도 알 필요도 없었다. 어른이 된 그 아이는 그 때 그 아이일 뿐이었고, 나 또한 그랬다. 많은 노력을 하지 않아도 다른 누구와의 대화보다도 편안하고 실없는 미소가 입가에 맴돈다.


추억은 추억이기에 아름답다고 한다.

내 욕심으로 그 아이를 찾아 함께 추억의 상자를 열어본 것 까지는 좋았지만 이렇게나 많은 것들이 상자를 채우고 있었을지, 언제쯤 쏟아져 흐르는 이것들을 다시 되담고 뚜껑을 닫을 수 있을지, 나는 알지 못한다. 어서 뚜껑을 닫고 있던 자리에 되돌리고 각자 갈 길을 걸어야 하는데. 그리고 가끔, 아주 가끔 살짝 열어보고 서로의 안부를 물어야 하는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오랜 시간 느끼지 못한 여러 감정이 되살아나 나를 매일같이 따라다니는 요즘이, 내 감성이 죽지 않았다는 증명인 것 같아 한편으론 신기하고 기쁘다. 사실 서둘러 뚜껑을 닫을 생각도 없다. 누군가를 바라보며 이렇게 자기감정에 충실할 수 있는 경험, 누구나 한번쯤 있겠지만 언제나 가능한건 아니기에. 아무에게나 가능한건 더욱이 아니기에. 


본능에 충실하니 마음은 행복한데 가슴엔 돌이다. 

언제쯤 행복과 감사만이 남을까. 그런 날은 올까.





덧글

  • type1jin_7 2020/03/06 15:25 # 삭제 답글

    나이키 쿠키니를 신고 리바이스 청바지, 디젤 가방에서 당시 최신형 니콘 디카를 꺼내던 소년을 알게 되었다......
    <중략>
    종결 장 쓸 때까지 살아 있을 까...?
  • saltyJiN 2020/03/07 02:04 #

    흔한 된장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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