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 DIVE by saltyJiN

2005년 11월. 태어나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떠났다. 이전에도 혼자 간 적은 있었지만 현지에 친구, 아는 사람이 없이 떠난다는
점에서 이전의 홀로 여행과는 달랐다. 나름 혼자 여행한다는 생각에 설레기도, 혼자하는 여행의 멋진 상상들과는 영 다른 현실에
매일같이 녹초가 되어 쓰러지곤 했다. 1주일의 후반에는 한걸음 한걸음 발바닥이 너무 아파 수양하는 기분으로 다녔고, 본래
어깨가 그리 좋지 않은데 늘 배낭을 메고 다니느라 허리며 어깨며 등짝이며 쑤시지 않는 곳이 없어 파스를 구입해도, 붙이고
한두시간이나 시원하지 금새 약발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혼자선 등에 원하는 위치에 파스 제대로 붙이기도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내가 이거 뭐하는 짓인가 지금' 하는 생각도 들었었고. 많은 관광명소를 보겠다는 욕심에 여기저기 내발로 다닌것도
큰 재산이 되었지만 사실 이런건 아는만큼 보이고 느껴지는 법이라고 나같은 사람은 봐도 그저 사진찍기 바쁘고 이게 왜 의미가
있는건지 잘 알지도 못한채 돌아오기 일쑤다. 그럼 이 여행을 통해 뭐가 남았으며, 나에게 큰 영향을 끼쳤는가. 그걸 여기에
적어보자 한다.

여행 이틀째였다. 그러고보니 아직 적지를 못했는데 여행 목적은 오사카를 중점으로 쿄토, 코베, 나라를 도는 칸사이 여행이었다.
숙소는 오사카의 남쪽 번화가(크게 북쪽의 우메다와 남쪽의 난바로 나뉜다)인 난바의 서쪽 아메리카 마을에 있었다. 이날은
하루종일 쿄토에 있다가 저녁에 오사카로 돌아와 숙소를 지나 더 서쪽을 거닐고 있었다. 여행 하다보면 느껴지는건데, 어느
골목, 도로를 끼고 인파가 뚝 끊어지는 구역이 있다. 달리 출입금지라든가 슥 보기에 무서운 동네라든가 하는것도 아닌데 중심지
만큼 화려하지 않아서, 가게들이 띄엄띄엄 있어서 그런지 딱 발길이 끊기는 분기점 비슷한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때가 딱 그랬다.
바로 길 하나를 건너면 난바의 서쪽 번화가인 아메리카 마을인데 어찌된게 도로 하나를 끼곤 가게들도 확 줄어들고 조용하고
어두워졌다. 그렇지만 그리 위험한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았기에 잠시 배회하기로 마음먹곤 천천히 걸어보았다. 그러다 어두운
길가에 빛나고 있는 네온을 발견한다. 색상도 색상이었고 주변에 간판들이 그리 없었기에 유독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아래엔
고기집 등이 걸려져 있는게 대조적으로 인상적이기에 일단 사진부터 찍었다.




Red Hot Chili Peppers - Otherside

어디서 본건 있었는지 여행가서 혼자 bar에 간다는 것에 대한 동경이 있었나보다. 그래도 다짜고짜, 그것도 이런 좀 외진곳에서
불쑥 들어가기엔 용기가 부족해 안을 살짝 들여다 보려 했지만 각도상 내부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3~5분 가량을
이 앞에 서서 망설이다가 결정적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계기는 안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였다. 좋아하는 Red Hot Chili Peppers의
곡이 흘러나오고 있었기에 대체 뭘 근거로 '여긴 믿어도 되겠어' 라고 생각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이로써 나의 bar 인생이 시작된다.

들어가기 전, 문 옆에 있던 화이트 보드.

오뎅 재료중에 좋아하는 건
1. 아츠아게 (튀긴 두부), 2. 무, 3. 모찌킨챠쿠 (유부피로(아마) 떡을 싼거)입니다.

(인터넷에서 멋대로 퍼옴. 사진보니 먹고싶어진다.)

마지막 킨챠쿠는 먹어보지 못해 모르겠는데 앞의 두개는 나와 취향이 같다. 나의 오뎅 베스트3은
계란, 무, 아츠아게.

허락을 구하고 사진을 찍기 시작하자 흥미롭게 보였는지 이거저거 물어보다 출신지 이야기가 나와 한국인임을 밝혔더니
더욱 더 흥미를 보여주신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어느정도 업무용 대화가 아니었을까도 싶지만 그렇지도 않은게 이
잘생기고 시원시원한 케이형은 굉장히 솔직했다. 글로 표현하기에는 어려운, 무언가 통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흔히 토쿄를 서울에, 오사카를 부산에 비교하곤 한다. 각 수도와 제2의 도시라는 점에서도 상통하지만 사람들의 성격을
얘기할 때도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오사카는 말도 좀 거칠게 들리고 흔히 일본인은 말을 돌려한다는데 물론 사람 나름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오사카 사람들은 표현이 직선적인 편이다. 그래서인지 다른 손님들 이야기도 재밌었고 이방인에 대해
그렇게 벽을 쌓아두지 않는 느낌이 참 좋았다. 케이형도 그렇고, 여기서 만난 다른 손님들도 그렇고 경계하기 보다는 오히려
 흥미를 가지고 계속 말걸어주고 함께 즐겁게 대화를 진행해 나가려 해준 점이 고마웠다. 그들에겐 일상적인 풍경일지 몰라도.

사실 여행을 하면 나 말곤 죄다 현지인이지만 그들과의 접촉은 쉽지 않다. 적어도 나에겐. 그러기에 이런 공간을 통한 현지인과의
만남은 너무나 새로웠고 큰 경험이 되었다. 허나 이것도 일본에서나 하지 다른 곳에선 자신이 없다. 일단 일본 bar는 서비스
정신이 투철하기에 혼자가더라도 좋은 바텐더를 만난다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설령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의사소통을 하려 노력을 해줄것이기에. 
 
루팡3세.

레니의 LP를 보고 어찌나 반갑던지.

또 오라는 말에 정말로 여행 6일째, 돌아가기 전날 저녁에 다시 들렀다.
첫날이었는지 두번째 날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데 케이형이 손님이 없는 틈을 타 맥주를 하나 들고와 내게 건내주며
옆에 앉아 이야기를 했다. 계속 시원하게 웃던 목소리와는 조금 달리 진지한 목소리로, 二回から目薬(이층에서 안약넣기)라는
속담을 아느냐고. 몰랐지만 전자사전을 지니고 있었기에 바로 찾아봤다. 이층에서 일층에 있는 사람의 눈에 안약을 넣는,
일이 좀처럼 마음먹은대로 풀리지 않는 상황을 나타내는 속담이었다. 자신이 현재 그러하다 했다. 지금 이 가게 주인은 따로
있고 자긴 월급받고 일하는 상황인데 조만간 그만둘 예정이라 한다. 독립해서 자신의 가게를 갖고 싶은데 아직 그러기엔 
여러모로 상황이 여의치 않단다. 가게 내면 연락 주시라고, 꼭 다시 와보고 싶다는 뜻을 전했고 그 외에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듬해 7월, 짧게 다시 오사카를 찾았다. 케이형이 dive를 그만두었다는 얘기는 들었었지만 그래도 가게 분위기가 워낙 좋았기에
다시 찾아갔다. 레니의 LP들은 싹 사라지고 알수없는 레게 음반들이 들어서 있었다. 새로운 바텐더는 동글동글하니 사람은 
좋아보였지만 케이형의 강렬한 인상이나 그런 이미지와는 영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아쉽지만 여기 다시올 일은 없을 듯 했다.

다음날, 점심에 케이형을 만나 식사를 함께했다. 독립을 하기위한 준비단계로 요리도 배울겸 아는 분의 식당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쁘게 일을 하며 지내고 있었다. 워낙 바쁘기에 긴 시간은 함께하지 못하고 그렇게 또 헤어졌다. 

2007년엔 신년 인사겸 문자로 연락을 취했고, 2008년엔 1년의 공백도 있고 보낼까 어쩔까하다 결국 보낸 것 같은데 답장을
받지 못한 것 같다. 바빠서 답장을 잊은건지, 연락처가 바뀐건진 모르겠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더이상 알아보려 하진 않았다.



날 잊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언젠가 오사카에 다시 가게되면 꼭 찾아 만나고 싶은 사람이다.
그땐 형 가게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형은 내 bar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람 중 하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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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persoulfighter : 080628 Montreal D4; Are you spy? 2008-08-21 17:09:22 #

    ... 의 말에 정말 돌아가기 전날 들러 여행의 마지막을 정리했었지. 단순히 놓고보면 그때의 관서여행이나 이번 여행이나 다를 바 없지만, 그땐 나를 반겨주는 바텐더가, 아늑한장소가 있었다. dive, 지금은 그만뒀지만 언젠가 다시 볼 수 있겠죠 케이상. 동물병원.용돈벌기인지 학교숙젠지 애들이 세차하라고 난리다. 인터넷 추천으로 찾아간 Pâtisserie De Gascog ... more

덧글

  • 딸기뿡이 2008/08/22 23:18 # 삭제 답글

    케이형이라는 분.. 왠지 나중에 오사카 가면... 다시 만나게 될 것 같은 느낌...확신합니다, 찾으실 거라고! 일본의 어느 바에 가셨다는 게 여기 DIVE군요.. Jin님 이 포스팅 엄청 특별하게 느껴지는 거 아세요? 처음으로 여행한 나라의 어느 바..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음악에 이끌려 용기 내어 들어간.... 분위기도 정말 좋은데요......... 또 다른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하고 보채게 되는 군요 쿨럭~
  • saltyJiN 2008/08/23 06:01 #

    감사합니다. 다시 보게되었을 떄 케이형의 가게를 포스팅하게 되면 더 좋겠구요. 특별한 느낌이 전해졌다니 다행이군요. 여긴 제게 있어 정말 특별한 곳이거든요.
    타지에서 한두번 가본 가게를 '여기 좋았다. 또 와보고 싶다'라고 기억하는 건 종종 있지만 여긴 그 이상으로 '오사카에 가면 일단 첫날 저녁은 여기에 얼굴을 내밀어야 해', 마치 고향에 돌아가 집에 일단 인사를 올리는 것 처럼, 발 붙일 곳 없는 타지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받아들여주는 따뜻함을 느꼈거든요. 물론 dive라는 곳의 분위기도 좋았지만 역시 케이형을 빼고, 사람 좋은 오사카 손님들을 빼곤 이야기할 수 없지요. 태어나 처음으로 혼자 간 bar이자 이후로 혼자서도 bar를 찾을 수 있게 해준 계기가 되었고 무엇보다 목표를 지니고 뜨겁게 살아가는 케이형을 알게 해 주었기에 참 소중한 기억이랍니다.
    이후로 신세를 지게 된 bar가 두세곳 있긴 하지만 특별은 한데 저에겐 어느정도 일상화가 되었기에 그렇게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나올지 모르겠네요. 안그래도 요즘따라 생각나긴 하는데... 좀 더 향수병이 도지면 올릴지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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