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이전 by saltyJiN

흘러 넘치는 감정으로 무작정 감사의 말을 전하겠다고 그 아이를 찾아 나섰다. 찾을 수 있을지 몰랐기에 찾은 후의 일은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그러기에 찾은 후 감정의 후폭풍은 나 자신도 놀라게 하였다. 가슴 설레는 일, 아픈 일, 더이상은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그 아이는 긴 시간을 지나 내게 들어왔고 흥분과 기쁨의 두달은 이제 다시 감사와 추억으로, 조금씩 그 날 이전으로 제 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다. 




사실 그 아이 눈치보며 제 자리에 돌려놓는 시늉을 하고 있다. 

일부러 어설픈 연기로 다 들켰어. 라고 한마디 건네주길 바라며.  

이렇게 해서라도 관심 하나라도 더 끌려는 나를 보니 아직 멀었나보다. 



노랫말 by saltyJiN

가요에는 왜 이리도 사랑노래 이별노래가 많은건지. 

시대와 연령대 불문하고 공감대를 형성하기 좋다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너무 많다.

아니면 **님이 최근 들은 곡과 함께 듣기 좋은 노래의 알고리즘 미끼를 물어버린 걸까. 


학창시절 이적, 유희열, 이승환으로 감수성의 토대를 쌓고 나름 컸다고 생각할 무렵 윤종신으로 다져 주었다. 16년 전 한국을 떠나며 새음반, 유행곡과 멀어져갔다. 간간히 유튜브에서 스케치북을 단편단편 보거나 월간 윤종신 프로젝트로 소식을 접하는 정도. 최근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라는걸 처음 접하며 위 네분의 공백을 채워가고 있다. 


앱으로 듣다보니 가사를 동시에 볼 수 있어 덕분에 언제부터인가 크게 귀 기울여 듣지 않던 가사를 찬찬히 살펴보게 된다. 학생때는 랩도 씹어 삼키고 이때 외운 노래들은 지금도 반주만 깔리면 술술 나오는데 이후에 접한 노래들은 노래방 자막이 없으면 도무지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그렇게 위에 적은 네분의 가사를 되새겨보니 이전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생각이 든다. 이분들은 어떤 삶을 살아 온걸까. 사랑, 이별, 한번 두번으로 이런 곡들이 수두룩 나오는걸까. 이분들은 추억의 서랍이라도 있어서 오늘은 이 서랍을 열어서 이 추억으로 이런 느낌으로 써보자, 하는 걸까. 대체 얼마나 큰 아픔을 겪었으면, 얼마나 행복했으면 장가도 가고 자식도 있으신 분들이 (한분빼고…) 여전히 이렇게 센티한 곡으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걸까. 그때 감정에 심취하지 않으면 어려울텐데, 배우가 연기하듯 필요한 때에 그런 감정이입이 가능하다는 걸까. 창작이 끝나면 차분히 다시 서랍을 닫을 수 있는 걸까. 그렇게 가슴 아팠는데, 행복했는데, 담담히 닫을 수 있는 걸까. 그걸 평생 지니며 사는건 가능한 걸까.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거겠지. 

그럴 수 밖에 없는 거겠지. 


가요는 사랑노래, 이별노래가 너무 많아 식상해. 이놈의 발라드 대국. 다들 사랑꾼이야? 노래방만 가면 대한민국 모든 남자 로맨티스트. 그럼 왜 헤어지고 왜 이혼해? 하며 팝과 일음을 열심히 들으며 사랑을 노래하지 않아도 좋은 곡은 많다고! 하며 이상한 자부심 아닌 음악부심을 살짝 지녔던 적도 있었다. 


그랬는데.


나도 별 수 없구나. 사람들이 좋아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나보다. 오늘도 누구나 한번쯤 겪었을법한 노랫말에 나를 욱여넣는다.








요즘 나는 by saltyJiN

당시 듣던 노래를 서로 들려주고, 울고 웃고 또 울고. 
만날 수는 없지만 연락을 통해 일상을 나누고.
언제나 끝이 나려나 이놈의 추억팔이 감성팔이는 도대체 바닥을 드러내지 않고. 
하고 싶은 말도 묻고 싶은 말도 많지만 실끝 남은 이성을 부여잡고 꼭꼭 눌러 두고.
허나 이내 참지 못하고 손이 가요 손이 가 카톡에 손이 가고. 
대단한 착각이겠지만 요즘 나는 어쩐지 연애하는 기분.   

그럼 왜 날 던지지 못하냐고? 

이어지는 내용

그 날 이후 by saltyJiN

찾고 싶었다. 찾아야 했다. 


카카오톡은 커녕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전화번호는 최면을 걸면 기억 해 낼 수 있을까. 

당시 그 아이가 살던 아파트까지도 전철타고 자연스럽게 찾아갈 수 있는데,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났다. 한국을 떠난지 16년. 처음부터 연결고리는 많지 않았지만 지금와서 찾으려 하니 더더욱 남아있지 않았다. 아니, 남길 수 있었으나 그 아이의 성의를 눈치채기에 당시의 난 너무 둔했다.  


그 흔한 SNS를 할 성격도 아니고 동명이인도 많은 이름이라 모두 허탕이었다. 2년간 아무런 관련없는 전국의 동명이인을 염탐했다. 만약 얼굴에 손을 댔다면 지금 이런 모습일까,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허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면 이내 답이 나왔다. 모두 꽝. 그 아이의 눈은 특별했기에.  


그렇게 한달에 한두번쯤은 잠못드는 저녁 습관처럼 이런저런 기억의 실마리를 부여잡고 찾았 헤매었다. 토이의 ‘인사’를 홀로 운전하는 차에서, 잠들기 전, 수없이 들으며 이런 저런 재회의 모습을 그려 보았다. 아직 살아온 날 보다 살아야 할 날이 더 많다만 들은 횟수를 시간으로 나누면 다른 어떤 인생곡보다 알차게 듣지 않았을까. 그때마다 몰려오는 불안, 공허, 아련함. 그래도, 언젠가는 만나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었다. 그러기에 설마와 역시나를 반복하는 수 밖에 없었다. 


설마로 시작한 또다른 어느 날, 그런데 끝은 역시나가 아니었다.

미화라면 미화이지만 이건 기적, 혹은 틀림없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동안 담아둔, 어쩌면 간직한 채 평생 전할 수 없었을지도 모를 말을 전했다. 

그리고 서로의 공백을 채워나갔다. 그러다 알게 된 몇번이고 엇갈린 서로의 길. 그 아이의 마지막 용기를 담았던 표현은 당시 내겐 너무 담담했고, 나는 매번 내민 손을 저버렸다. 그게 마지막 손길이 될 줄도 모른채. 


서로의 길이 엇갈렸기에 안타깝고, 이젠 함께 걸을 수도 없기에 더욱 안타깝지만, 

내가 그 아이를 찾던 시기에 그 아이도 추억을 되짚고 순수한 감사의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는 이야기는 내게 큰 안도와 위안이 되었다. 


그렇게 대화는 이어졌고 서로가 시간의 태엽을 되감는 데에는 별다른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우리에겐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 많은 일을 알 시간도 알 필요도 없었다. 어른이 된 그 아이는 그 때 그 아이일 뿐이었고, 나 또한 그랬다. 많은 노력을 하지 않아도 다른 누구와의 대화보다도 편안하고 실없는 미소가 입가에 맴돈다.


추억은 추억이기에 아름답다고 한다.

내 욕심으로 그 아이를 찾아 함께 추억의 상자를 열어본 것 까지는 좋았지만 이렇게나 많은 것들이 상자를 채우고 있었을지, 언제쯤 쏟아져 흐르는 이것들을 다시 되담고 뚜껑을 닫을 수 있을지, 나는 알지 못한다. 어서 뚜껑을 닫고 있던 자리에 되돌리고 각자 갈 길을 걸어야 하는데. 그리고 가끔, 아주 가끔 살짝 열어보고 서로의 안부를 물어야 하는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오랜 시간 느끼지 못한 여러 감정이 되살아나 나를 매일같이 따라다니는 요즘이, 내 감성이 죽지 않았다는 증명인 것 같아 한편으론 신기하고 기쁘다. 사실 서둘러 뚜껑을 닫을 생각도 없다. 누군가를 바라보며 이렇게 자기감정에 충실할 수 있는 경험, 누구나 한번쯤 있겠지만 언제나 가능한건 아니기에. 아무에게나 가능한건 더욱이 아니기에. 


본능에 충실하니 마음은 행복한데 가슴엔 돌이다. 

언제쯤 행복과 감사만이 남을까. 그런 날은 올까.





1 2 3 4 5 6 7 8 9 10 다음